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달카날 해전 (문단 편집) ==== 해전 직전의 상황 ==== 곤도 제독의 2함대는 사전 항공정찰에서 64기동부대 소속 미 해군의 전함을 못보던 함종의 중순양함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미 해군의 전력을 얕보았다. 물론 정찰에서 함종을 오인하기는 종종 있는 일이다. 미 해군의 전함, 특히 사우스다코타는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제한을 받은 상태에서 최대의 성능을 뽑으려다보니 덩치가 작은 편이라 오인히기가 쉬웠다. 문제는 해전 도중 자신이 직접 육안으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중순양함으로 믿어 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1차전에서 함대의 주력함이 혼전에 휘말리는 바람에 전함 한 척을 잃어야 했던 경험이 생생했다. 따라서, 곤도 제독은 자신의 부대를 나누면서 '중순양함 중심의 약체 미 함대'는 경순양함과 구축함들로만 상대하게 하고, 전함과 중순양함들은 과달카날 포격을 위해 후위로 배치했다. 경순양함과 중순양함을 맞붙히는 선택은 당연히 휘하 함장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서 경순양함 전대를 둘로 나눴는데, 경순양함 센다이와 구축함 [[아야나미(구축함)|아야나미]], 시키나미, 우라나미를 사보섬 동쪽을 통해 남하하도록 했고, 경순양함 나가라와 구축함 시라유키, 하츠유키, 사미다레, 이나즈마는 사보섬 서쪽으로부터 진입하도록 했다. 그리고 본인은 중순양함 아타고를 기함으로 삼고, 전함 키리시마와 중순양함 타카오, 그리고 남은 미카와 함대의 생존한 구축함 4척과 원래 데리고 있던 구축함 아사구모와 테루즈키로 함대를 이뤄 '포격함대'라고 명명하고, 경순양함 전대 뒤에서 항해하기로 했다. 덧붙여서 경순양함 전대에게는 본대가 오기 전에 미 함대를 일소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멘탈이 좋지 않았던 것은 일본의 곤도 제독만이 아니었다., 월리스 리 제독의 64임무부대 역시 전투에 임하기 전부터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구축함 4척은 남은 연료 순으로 뽑혔던 탓에, 사실상 16 임무 부대의 각 구축함 전대에서 무작위로 차출된 셈이라 함장 간에 서열정리가 되지 않았다. 사실상 태평양 함대의 전함을 총괄하던[* 그리고 과달카날 해전의 결과, 공식적으로도 전함들을 총괄하게 되었다.] 리 '''제독'''을 앞에 두고 그 건에 대해 언급을 할 만큼 간이 큰 구축함 함장도 없었다. 두 번째로는 전함 함장들 사이의 미묘한 알력다툼이 있었다. 워싱턴의 함장 글렌 데이비스 해군 대령과 리 해군 소장은 자타공인 수상함 커리어와 경험을 쌓아올리던 실전파 장교들이었다.[* 실제로 리 제독은 2차 대전 종전이 열흘 지난 1945년 8월 25일, [[아이오와급 전함]] 아이오와의 함상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워싱턴, 즉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보다 최신예함이었는데, 전함 전문가들이었던 함장 및 제독들의 극성맞은 피드백을 받아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2척을 추가로 건조하는 대신 새로이 설계해서 건조한 개량형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태어난 사우스다코타의 초대 함장 토마스 개치(Thomas Leigh Gatch) 대령은 적지 않은 장교 이력을 해군 [[군사법원]][* 당시 미군에선 법무 병과가 별도로 없었고, 법 관련 전공 혹은 업무 경력이 있는 전투병과 장교들이 법무 업무를 수행했다.]과 [[미국해군사관학교]]에서 '''행정과 참모부 경력으로 쌓은 장교'''였다. 당연히 데이비스 대령이 개치 대령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리 제독은 레이더 지향 사격 연구를 데이비스 대령 및 워싱턴의 포술 주특기 부사관들과 함께 연구했었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의 레이더 및 포술에 대한 전문성 만큼이나 그 사이도 돈독했다. 그리고 리 제독은 개치 대령의 난처한 처지[* 행정 위주로 커리어를 쌓았기 때문에, 제독이 되려면 함장 커리어가 필요하긴 했을 것이다.]를 이해하고 감싸주었다. 물론 사우스 다코다가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 대신 대공 관제를 맡았는데, 침착하게 임무를 수행했고, 결과가 평타는 쳤던 점도 제독이 고려했을 것이다.그리고 리 제독에게는 다행히도 개치 함장은 상당한 인격자였던 데다가 사관학교에서 포술을 강의한 경력도 있고, 사우스다코타의 초대 함장이라는 유리한 여건도 작용해서, 함장 자리를 포커쳐서 따낸 건 아님을 보여주며 사우스다코타의 승조원들에게 깊은 신뢰를 얻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엄청난 카리스마가 깃든 리 제독이 있기 때문에, 2차 과달카날 해전은 1차 해전과 지휘부 구성에서 나쁜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이런 '책상물림' 출신 인사[* 개치 대령은 이후 중장까지 진급하였고 해군수훈십자훈장도 2회나 복수 수훈할 정도로 용맹히 전선을 누볐다. 책상물림 인사라고 다 무능한 것은 아닌 셈이다. 여담으로 개치 대령을 좋지 않게 봤던 데이비스 대령 역시 중장까지 진급하고 퇴역하였다.]는 유능하더라도 융통성 없고 원리원칙대로 수행하는 성격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그런데 개치 대령은 오히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부하들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사우스다코다는 승조원들의 실력과 전과는 좋은 대신, 청소나 세탁, 샤워에는 소홀해서 함선이나 승조원들의 청결 상태는 개판이었다고 한다. 세 번째는 미 해군 어뢰정과 교전할 뻔한 일이었다. 전술했듯이, 14일 새벽에 미카와 함대의 일본 중순양함에게 무모한 도전을 했던 기억 때문에 미 해군의 어뢰정들은 굉장히 민감했다. 어뢰정들은 대형함을 발견하고 호출부호를 물었지만, 리 제독은 아직 못 받았는데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64임무부대는 북상하면서 별도의 호출 부호를 받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어뢰정들은 즉시 불신하는 태도를 드러내며 워싱턴과 사우스 다코다를 향해 뇌격 침로를 잡았다. 성질이 폭발한 리 제독은 리 제독의 별명을 알고 있던 지인이기도 한 어뢰정장들의 상관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라고 말한다. || Ching[* 중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면 '[[짱개]]' 정도의 욕이다. 리 제독은 백인이고 아시아계의 피는 흐르지 않았지만, 그는 해군사관학교 시절부터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마침 성인 Lee도 우연히 중국계 성과 유사해서 동료들이 이런 별명을 붙여 주었다.] Lee가 지나간다고 전하라고!|| 다행히도 어뢰정들은 우군임을 알게 되었고, 64임무부대는 호출부호를 받았다. 이 해프닝으로 함대는 행정업무를 처리할 시간이 가뜩이나 부족했는데 더 모자라졌다. 그 대신이라기에는 뭣하지만 함대의 모든 사람이 리 제독의 성질머리를 알게 되어서, 제독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던 구축함의 함장들도 제독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게 된다. 어쨌든 일련의 해프닝이 끝나자 리 제독은 함대를 단종진으로 구성하기로 했고, 구축함 4척을 앞세운 뒤 그 뒤를 기함인 전함 워싱턴과 전함 사우스다코타가 뒤따르도록 하고, 과달카날 섬 북쪽 해역에서 북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하여 사보섬 서쪽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